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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예감, 이현호(2014)

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었다

물컵 안에 뿌리내리는 양파처럼 골방에 누워

내 숨소리 듣는다, 식어가는

유성의 궤적을 닮아가는 산〔生〕짐승의 리듬이

빈방으로 잘못 든 저녁을 잠재우고 있다​

 

물질의 세계로 수렴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붕대 같은 어둠이 있어 너에게 사행(蛇行)하는 길 썩 아프지 않았다

잠시 네가 아니라 끈적끈적한 입술을 섞던, 어느 고깃집의 청춘을 떠올린 것만이 미안했다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너의 형이하학과

당신 배꼽 안에서 하룻밤 머물면 좋겠다던, 철없는 연애의 선언만을 되새겼다

 

​이토록 평화로운 지옥에서 한 무명 시인이 왕이었던 시절

세상은 한 권의 책이고 그 책엔 네 이름만이 적혀 있었을 때

나는 온누리를 사랑할 수 있었지

데워지지 않은 슬픔이 통째 구워진 생선같이

구부러진 젓가락 아래 삼켜지길 기다리고 있다 해도​

 

한 장의 밤을 지우개의 맘으로 밀며 가는 내가 있다

너의 비문들을 나에게 다오

네게 꼭 맞는 수식을 붙이기 위해 괄호의 공장을 불태웠지만

어디에도 살아서는 깃들 수 없는 마음

네 앞에서 내가 선해지는 이유

애무만으로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산다는 게

싫지 않았다, 나를 스친 바람들에게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주었지

 

​너에게 골몰하는 병(病)으로 혀끝이 화하다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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