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소설로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W. 윰
슬픔아, 그 가슴 깊이 묻어져 나오지 말고 기억나지도 않게 꼭꼭 숨어있으렴.
슬픔이란 원통한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라는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일상적으로 슬픔이란 것을 겪고 나면 사람의 대부분은 이 슬픔을 잊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한다.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내더라도 어느 순간이면 그 힘든 시절을 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이란 것은 잊히는 것이 아닌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임을.
“ 안녕, 문 좀 열어주지 않을래? ”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제 귓가에서 들리는 환청인지, 혹은 누군가가 진짜 말을 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알아차린 것은 그것은 너무나도 애절하고 또 너무나도 울렁였다는 사실이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 순간이 제 예전의 모습을 비치고 있어서 더욱 비참해지기도 했다.
“ 내가 기억하는 너는 부드럽고. ”
상냥하고,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너를 매정한 아이로 생각하지.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니? 누군가가 제게 다시금 속삭였다. 슬프고도 아련한, 그 시절이 가끔은 생각나면 저 자신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추억의 물건들은 모두 마음의 바다라고 정한 자신의 가슴 한 편 공간에 모아 두었으니 두둥실 떠내려간 그 물건들이 어디에 도착했는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 저녁에 한 번 전화가 와. 네 모습이 영상처럼 떠다녀. ”
그 공간에서는 네 모습이 더욱 다가와서는 그런데 누가 너인지 모르겠더라. 그 깊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세찬 감정의 골짜기 사이로 제일 밑바닥 천천히 흐르는 그 부분에서 누군가가 속삭여 왔다.
“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어. ”
어느 날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네가 슬퍼하는 모습을 봤어. 그 처연하게 웃는 네 모습이 너무나도 아파서, 그래서 숨이 막혀왔지. 제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또 자신을 눈물짓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듣고만 있었다. 그 다정한 말이 더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있잖아, 나는 너를 직접 마주하지는 않았어. 이런 나를 너는 알겠니? ”
처음의 물음에 제가 살며시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련하고, 아프고 그 슬픈 기억 속에 흘러가는 편지들의 모습이 물방울을 이루어 속속히 떨어지는데 너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제가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들려오던 목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더는 들리지 않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소리는 멈춰버렸다. 제가 흐릿하게 웃으며 밝아오는 저 추억의 바다 너머로 계곡에 흐르는 가장 밑바닥의 감정에게 말했다.
“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바보야 넌. ”
슬픔이라는 이름을 가진, 늘 숨겨져 자신의 모습을 지켜만 보던, 자신이 행복하길 바라는, 오히려 잊혔으면 하는 그 감정.
“ 내가 쓴 편지들 속에서 빛나는 잊혀진 별 명왕성 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