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물의 호흡

W. 칼로

 창백한 미사포 아래 어둠 속으로 잠기는 꿈을 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젊은 사제들이 찬양의 말을 반복할수록 점점 더 깊고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더 이상 나는 눈이 보이면 안 되고, 귀가 들리면 안 되고… 언젠가 당신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었다던 천재들의 이야기를 사랑했다. 요새는 후천적인 쪽에도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이를 테면 베토벤, 고흐, 그런 류의 멀고 먼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었기에 바다 밑으로 오빠를 떠나보냈다. 자살로 요약되기에는 복잡한 사인死因이었다. 

 

 찬송가는 뜨겁다. 단어 하나하나가 가져오는 열기도 있지만 가장된 신앙이 창피하고 낯 뜨거워 더욱 그렇다. 못 박힌 남자의 시선을 피해 있는 힘껏 눈을 감으면 환각처럼 바다가 보이고, 나는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간다. 심해에 살고 싶었다. 바닥이 내려다보이는 광명의 바다보다는 빛이 부족한, 그 깊이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퇴화의 과정을 밟는 것. 그러기엔 성당은 너무 환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 투성이다. 하얀 천을 싸매 얼굴을 가린다. 옷이라도 눈에 띄지 않는 검정이 좋았을 것을. 그가 버릇처럼 부르던 오 솔레 미오, 그걸 흥얼거리는 행위는 이제 거의 맹신적이다. 처음엔 그저 멋쩍다가 아프다. 그러니까 늘지도 않는 노래는 그만 둬야 하는데.

 

 내일이 대회라죠?

 어머, 말도 마세요. 긴장해서 그런지 부모 말도 안 듣는다니까. 아드님은 잘 계세요? 그 댁 아드님은 똑똑하니까………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병 환자 같다. 우리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으로 명명되었다. 오, 당신 자식을 위해 순교하신 주 예수. 아버지의 이름 아래 버릇처럼 안부를 묻고, 문병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주일을 죽은 듯이 지냈다. 유령처럼 엄마의 등 뒤에 달라붙자 한 달 만에 그만둔 성가대 선생의 시선이 얼굴에 꽂힌다. 엄마와 선생에게 나는 하느님의 새, 체칠리아였으니 기쁨의 노랫가락을 원하는 만큼 읊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발랄하지만 소극적인 데가 있고, 윗사람에게 깍듯하나 어딘가 어리숙한 아이의 가면을 뒤집어쓴다. 체칠리아는 여전히 예쁘구나. 선생님은 네가 잘할 거라고 믿어. 믿어, 믿어, 믿어, 소용돌이친다. 확고한 목소리에 나는 열심히 하겠다며 거짓말을 칠 뻔 했다.

 

 그 애가 피아노를 쳤었잖아요, 얘도 죽은 오빠 따라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거죠.

 

 노래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부드러운 뺨의 시절이었고,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유명한 연주자는 아니었으나 건반에 손을 올릴 때면 부드럽게 미소 짓던 모두의 얼굴을 기억한다. 오빠가 어떤 풍경이든 아름다운 곡으로 치환해낼 때 나도 언젠간 멋있고 훌륭한 가수가 될 것이라 생각한 적 있었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꿈속까지 따라붙을 줄은 모르고. 꿈에서 그는 항상 '안 돼'라고 말했다. 엄마는 항상 '해'라고 말했고. 이도저도 아닌 채 선을 밟고 선 사람은 죽은 이가 뿌려진 바다와 육지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났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거란 걸 알았을 땐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성당을 나서자 비가 내린다. 내일 오후까지 쏟아진다는구나. 이대로라면 영원히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선명하게 날아와 몸에 박히는 파편. 한 번 마주하게 되면 내장의 일부인 것처럼 자리하는 불안감. 이제는 익숙해진 꿈속, 눈앞의 사람이 샐쭉 웃었다. 노래 기대할게. 따라 웃었으나 끝으론 일그러지는 표정을 막지 못했다. 타닥. 탁. 바깥의 빗소리, 들리는 듯하다. 질질 내 몸을 끌고 갈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억세게 호흡한다. 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 차오르다 못해 토가 나오는 반주. 눈치 채기 전에 이미 목구멍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무대로 향한다. 감각 속에서 카론이 노를 저으니 곧 어두워질 것을 예견한다. 그러니 죽은 아이를, 심해에 살고 있을 누군가를 사랑한 적 있다. 허락된 적 없는 이름이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