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소설로
가을 저녁
W. 누람
운명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나는 가끔 고민하곤 한다. 이렇게 또 해가 저물 모양이다. 석양이 춤추듯 사라지고, 내가 이렇게 창밖만 생각 없이 보게 되다니 장장 열 시간을 기다린 결과인 거다. 아침에 오디션이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홀은 꽉꽉 차있었는데, 이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드러누워 조는 사람,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마치 빛을 야금야금 주워 먹고 있는 피곤한 새싹들 같다. 나도 소파에 틀어박혀 있으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다니 채광 하나는 참 좋은 건물이다. 태양이 그들을 비추는 바람에 그들은 노랗게 익어간다. 나도.
마치 아가의 유치원 원복 같다.
사실 아가에게 바친 청춘과도 꼭 닮았다.
젊음을 잃었다고 표현하지야 않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아, 그 아이의 기나긴 속눈썹에 들어갔을까? 오 년 새 내 머리카락은 짧아지고 곱슬해졌다. 새싹, 다 새싹을 키우느라 들인 공 탓이다. 같이 꼭 행복해져야지 하고 계속 다짐했건만.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맞은편에서 어떤 사람이 스읍거리며 이를 갈고 있다. 코도 곤다. 금방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순간이 올 텐데 저 사람은 푹 퍼져 침이나 삼키고 있는 거다.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반,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 나는 중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니까.
사백구십육 번, 이제 대기하세요!
열정은 가치 있는 것이라 나는 끝없이 기다린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무슨 삶을 책임져야 하지.
해가 어깨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