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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

W. 채란

 어렸을 적의 나는 주사 맞는 것을 싫어했다. 주삿바늘이 맨살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에는 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따끔해요-. 간호사 언니가 상냥하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마냥 무서웠다. 울상을 지으며 옆에서 도닥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많이 아파? 돌아오는 다정한 대답.

 

 '금방 끝나. 정말 한순간이야.'

 

 신기하게도 눈을 세 번 깜박이기도 전에 끝났다는 간호사 언니의 말이 들려왔었다. 말 그대로 눈 깜박한 사이였다. 아픔은 가지고 있던 공포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조용히 깜박였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정말 겁도 많고, 마냥 즐거웠고……. 잠시 회상에 잠겨있던 정신을 차려 이번엔 눈앞의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사실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몽롱한 정신이 보여주는 환상에 가까운 잔향이었다. 어렸을 적이 느닷없이 생각난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이리라.

 

 

 -엄마, 죽는다는 건 무서워? 많이 아플까? 펑펑 울 정도로?

 -글쎄, 딸.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찔리는 거 없이 당당하게 행동해왔다면 죽었다는 걸 깨달아도 큰 미련이 안 생길 거라고. 우리 딸은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니?

 

 -친구들이 죽으면 끝이래. 아무것도 없대.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고 하니까 막 웃었어.

 -저런, 나쁜 친구들이네. 그럼 우리 딸만 천국에 가면 되겠네.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우리 딸밖에 없는걸.

 

 

 불길이 치솟았던 거리는 차갑게 식어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있다. 무너진 건물들. 싸늘한 적막감만이 감도는 거리. 그 거리에 수놓아진 검붉은 핏자국. 그 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사람의 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분명히 주저앉아서 마구잡이로 울고 싶은 기분인데도 오히려 눈은 뻑뻑이 말라간다. 혈향만이 남은 텅 빈 마을을 제법 담담하게 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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