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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3, 백석(1939)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 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 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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