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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예감

W. 다보

 끝까지 쳐 놓았다고 생각한 불투명한 커튼 두 장 사이로 빛이 새었다. 깔아놓은 이불 아래서부터 냉기가 온몸을 적셨다. 끈적거리는 액체가 살을 파고들었다. 기묘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고는 몸을 덮은 천 조각을 끌어당겨 억지로 눈을 가렸다. 빛이 온몸을 태울 것 같았다. 밝은 그것이 닿는 살가죽이 금방이라도 벌겋게 달아올라 피를 토하며 곪아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오싹했다. 무서웠다. 이 문을 열어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도,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어느 순간 내게는 두려운 일이 되고야 말았다. 너를 만나고서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내 모든 삶은 너로써 변화되었다. 내 소유의 무언가 중에서 너를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신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삶의 활기는 사력을 다해 숨이 꺼져간다. 다해가는 생명을 살릴 만한 것은 보이지 않고,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운명에 처해 버린 것이다. 병자의 그것 같은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이 느껴진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두려움을 가슴 저 깊은 곳에 뿌리박고 사는 겁쟁이, 또는 나, 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딱딱하게 굳어 미적거리는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살아야지, 죽지는 말아야지. 살고자,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서 너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이 갈리고 턱이 찢어지고 땅을 기는 온몸이 쓸려 상처가 났지만 손톱만큼의 격통도 느끼지는 못했다. 기어가는 길에 너를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의 온몸을 네가 감싸고 있기 때문에? 둥실거리는 감각이 자극을 차단하고, 통점을 죽인다. 나는 생존을 위한 반응을 포기했다, 너로 인해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생존을 위한 포획을, 또는 포획을 위한 사냥을, 심지어는 사냥을 위한 움직임조차도 물어뜯었다. 이것은 너의 책임 하에 있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허상으로 떠올려 본다. 내 말보로 담배 연기 속에 흐려지고 묻혀 보이지 않는 너의 얼굴을, 너의 팔을, 너의 다리를, 너의 모든 것을. 한때는 너와 함께라면 시멘트 바닥에서 잠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너의 체온을 느끼며 살 수만 있다면 그곳이 유황불 속이라도 좋았다. 그것은 내 어린 날의 치기였고 철없음의 대변이었으며 끝없는 허언의 세계였다. 사실은 지금도 그래, 네가 있으면 나는 어디라도 좋다.

 

 

 나는 이제 그 시절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나의 우주가 너로 가득했을 때, 두개골 속 찰랑거리는 뇌수조차 네 분비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뼛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끈적거리는 골수조차도 너의 것을 이식받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온 세계를 사랑했다, 아꼈다, 품에 안았다. 나의 세계는 너였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은 나의 우주, 세계, 그리고 너. 그것은 나에게 어떤 정의, 또는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깨알같이 흩뿌려지는 눈물 같은 비 속에서도 너만을 생각했다. 그것은 현재의 무언가에 대한 불길함의 징조였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코털만큼도 없지.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고 미래는 현재의 반복이고, 모든 것은 순환의 바퀴를 돌고 있다, 수레바퀴는 멈춘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알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망쳤고, 현재가 미래를 망칠 것이고, 결국 네가 내 인생은 망쳤다. 나는 또 다시 알고 있다, 너는 내 인생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이것은 사실 대전제에 불과하다. 끓지 않은 물, 예열되지 않은 전기장판처럼 식어 있던 것은 점점 낮아지는 발화점에 타오른다. 그래, 발화점이 낮아지지 않았다면 타오르지 않았을 일이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무엇도 알지 못했지만 그 사실을 빌미로 용서 받을 수는 없다. 나는 또, 다시, 알고 있다. 무지는 죄악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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