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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다. 슬프지 않은데 슬픔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슬프지 않다. 억지로 일으킨 몸을 한숨과 중첩된 무거운 몸동작과 함께 다시 이불 위에 뉘었다. 천천히 감았다 뜨는 시야에 단조로운 천장이 보인다. 그곳에 네가 새겨져 있다. 너의 얼굴, 너의 말투, 너의 체취, 너의 행동거지……. 문득, 네 마지막을 내가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비석에 새겨질 글자(碑文)를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非文)들의 나열로 새기고 싶다. 내용은 무엇으로 할까, 너로 지새운 밤이나 너의 웃음으로 채울까. 너의 체취에 대한 찬양과 너의 존재감에 대한 환희를 잔뜩 부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고? 아니, 그것은 사실이 아닌데, 나는 그저 네 생각을 떨칠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을 건너면 네가 보인다. 하루를 건너도 네가 보인다. 눈을 감으면 네가 보이고, 눈을 떠도 네가 보이니 나는 중병에 걸렸음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이것은 불치병일지도 모른다. 나는 병에 걸렸고, 죽어가고 있다.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산다. 너를 내 망막에서 지울 방법이 없다. 너는 이미 내 눈동자에 착상되어 있다. 눈동자를 긁어낼 수는 없으니 너는 평생 내 눈알 안에서 살겠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네 이름조차 혀에 올릴 수 없어지는 때가 많다. 내 성대가 너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게 되면 너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빌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너의 이름 석 자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너를 위해서라면 나의 성대를 잘라내어도 좋으니, 나는 언제라도 너의 이름을 발음하고 싶다. 너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다, 너는 내 뇌를 조각내고 있는 것이다.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고 뇌수가 흘러나올 때까지, 끝까지. 나는 너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너에게 이름표를 달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이름표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끝까지 쳐 놓았다고 생각한 불투명한 커튼 두 장 사이로 빛을 새었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고 있지도, 무서움으로 눈을 감고 있지도 않다.

 

 

 너에게 골몰하는 병으로 혀끝이 화하다.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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